화장실

농우잡록 | 2010/01/18 20:49 | 농우
1.
늦게 출근을 해보니 계량기가 동파되어 수도가 안나온다고 한다. 계량기야 뭐, 회사 불러서 고치면 되지, 해서 계량기 고치는 사람이 오더니 잠깐 사이에 다 고쳐놓는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외부에서 건물로 들어오는 파이프가 다 얼었다. 그건 다시 그쪽 관계된 사람 불러서 손봐야 한다'는거다. 결국 계량기는 고쳤으나 물은 여전히 나오지 않는다.

물이 나오지 않으니 제일 먼저 아쉬운것은 커피다. 끓여먹기 참 어렵다. 그리고 손씻는것도 힘들다. 평상시에는 일하면서 자주 씻으니 하루에도 열댓번은 씻게되는데 오늘은 어쩔 수 없이 꼭 필요한 경우에만...

그러나 뭐니 뭐니해도 불편한것은 화장실이다. 수세식 양변기, 이건 수도가 나오지 않으면 쓰는 방법이 없다. 물론 옆에 물을 가득 받아다놓고 바가지로 퍼서 부으면 못쓸것도 아니지만...


2.
언제부터 화장실이라는 말을 쓰게 됐는지 모르겠다. 변소..가 일반적인 단어였지 않나 싶은데...지역마다 말이 다르고 여러가지 단어들이 있는 모양이지만 아마도 내가 썼던것은 '변소'였던것 같다.

어릴때 우리집엔 변소옆에 커다란 살구나무가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잘 자랐나? 그러나 실은 살구나무는 몰라도 변소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 워낙에 어릴때 이사 나왔으니...재래식이라 하지 않고 흔히들 이야기하는 퍼세식, 혹은 푸세식이었나? 그런것도 잘 모르겠다.

조금 더 자세한 기억이 남아있는 곳이라면 아마도 큰우물 옆의 할아버지댁이었던것 같은데 그건 퍼세식도 푸세식도 아니다. 거적대기로 사방을 막아 헛간을 만들고 그 헛간은 다시 둘로 나뉘어 한쪽은 변소, 한쪽은? 모르겠다...

그냥 땅바닥을 움푹하고 길게 파놓고 거기 길다란 돌을 두개 놓은 것 뿐이다. 옆에는 삽이었는지 가래였는지가 있었고 그건 커다란 재무더기에 꽃혀있었던것. 돌위에 두발을 딛고 올라가 볼 일을 보고 나면 옆에 있는 재를 똥위에 듬뿍 뿌리고 가래로 쓱 밀어서 뒤로 던져 버린다. 당연히 뒤쪽은 똥과 재가 뒤범벅이 되어 봉긋한 산처럼 쌓이고....

시골에서, 아마 이런식으로 거름을 만들어 썼으리라고 생각이 된다. 고향에서의 기억은 아마 이것이 전부인것 같다. 그리고는 그나마 도회지라는 인천으로 이사를 왔는데 그야말로 퍼세식, 푸세식 화장실. 커다란 드럼통을 묻고 그 위에 널빤지 두개 걸쳐놓은게 다였다.

이런식의 화장실은 대학때 외삼촌과 직접 만들어서 쓰기도 했는데 처음엔 그 널빤지 부러지지나 않을까 걱정이 됐었다.

조금 큰 건물에, 말하자면 중학생 시절에는 커다란 공동 화장실이었는데 시멘트 건물로 깨끗했다. 그런데 밑의 변기통...통이 아니라 화장실 지하는 통째로 거대한 저수조였던 셈인데 얼마나 크고 깊던지 한참이나 지나야 똥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고 우스개 소리들을 했었다.

수세식 화장실, 양변기를 처음 본것은 국민학교 4학년때 쯤인것 같다. 서울 사시는 5촌 당숙네를 놀러갔는데 화장실에 들어가 앉아서 참으로 난감했었다. 물을 내리라는데 그게 무슨 소리인지, 대체 밑닦을 종이는 어디 있는건지(화장실 휴지도 처음 봤다)...결국 신문지 찢어서 닦고 변기 안에 넣고...어찌어찌 물 내리는것까지 해낸 모양이다. 나중에 작은어머니께서 차분하게 알려주시는데(신문지를 넣고 물을 내렸으니 변기가 막혀버렸었을거다)  얼마나 낯뜨겁던지...

좌변기는 그리고 나서도 한참이나 있다가 중3때 처음봤다. 멋은 들어서 친구들과 덕수궁으로 국전을 보러갔는데 화장실이 있었다. 늘 장이 안좋아서 어딜가도 화장실부터 찾는 나는 거기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신호가 와서 화장실을 찾아 들어가고보니...이런!

대체 어디다 똥을 누라는거야? 앉아서 볼일 볼 디딤돌이 있는것도 아니고, 틀림없이 변기일거라고 생각되는 놈이 있긴한데 대체 구멍이 없는 것이었다. 덮개가 닫혀있었던건데 그걸 언제 봤어야 말이지~ 한참이나 고민하고 살펴본 끝에 덮개를 여는데는 성공했는데 열고나니 또 고민이다. 열어보니 물이 담긴 도기그릇인데 이것도 어디 딛고 볼일 볼 발판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던것...

한참이나 고민하다가 결국 그대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같이 간 놈들에게 이야기를 해서 세놈이 의논을 하고 들락거린 끝에 결국 내가 변기 뚜껑을 두개 한꺼번에 열어버렸다는걸 알았고 속뚜껑을 다시 내리니 거기 앉으라는거구나~하고 눈치는 챌 수 있었다.

이놈들을 다시 내보내고 혼자 들어와 문을 잠그고 바지를 까고 앉았는데...이런! 이놈의 변기 높기도 하다~ 두 다리가 땅에 닿지 않고 공중에서 대롱대롱~~ 내려올땐 정말 곤란하더라는 얘기....그리고 대학졸업 후에도 한참 동안 좌변기 볼 기회는 없었던것 같다.

3.
재래식 화장실의 단점은 나는 세가지 정도로 본다.

첫째는 냄새다.
물론 사방으로 트인 구멍이 많아서 냄새가 빠져나갈 여지가 많기는 하다. 실은 최대한 밖의 대기흐름에 맡겨버리는 구조이긴 한데 이게 개량이니 뭐니 해가면서 점점 폐쇄된 공간이 되고 그러면서 냄새가 빠져나갈 구멍이 적어진것 같다. 냄새는 그래서 가장 큰 문제, 더구나 여름에는...

한여름에 설악산에 등산갔다가 양폭산장인가 부근에서 화장실이 급했던 적이 있다. 이런 곳의 화장실이야 어쩔 수 없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눈이 아플정도로 냄새와 자극이 강해서 오래 있을 수도 없었던 경험이 있다. 평상시에도 속이 안좋을대는 미식거리기도 하니...

둘째는 벌레다
주로 파리와 구데기일텐데, 파리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구데기는 정말 곤란하다. 나는 화장실에 가면 굉장히 오래있는 편인데, 어떤때는 다리가 저려서 더 못 앉아있고 나올때도 있다. 그런데 구데기가 많을때는 이거 아주 난감하다. 신문들고 볼일 보다가, 혹은 볼일 보며 정신없이 이런 저런 상상에 빠져있다가 다리로 스물스물 기어올라오는 구데기를 발견하면 그거 참...

거미가 많다는것도 참 어렵다. 해충이 아니라고 마음을 다잡아도 거미가 예쁘게 느껴지지 않는데다가 거미줄이 또 여간 거추장스러운게 아니다....

세째는 시각적인 문제인데...
대개의 경우에 가정용의 조그만 화장실들은 '다 보인다'는 것이다. 우리가 배설해놓은 '쌀의 시체들' 그 위에 휴지들, 굳은것이면 굳은것인대로 습한것이면 습한것인대로 보기가 좋지는 않다. 물론 선입견에 물들지 않은 어린아이들은 똥모양의 초콜렛도 맛있게 먹는다고는 하더라만, 문제는 그런 정도 어린아이들이 혼자서 재래식화장실에 들어가는것 자체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위험한 점도 있어서...

냄새와 시각적인 효과가 겹쳐서 속을 뒤집어놓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재래식 화장실이 퇴출되게 된것은 이런것 때문이 아닌가 싶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장점이 더 많다고 생각하고 있다. 자연의 선순환 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지만 재래식 화장실은 내겐 그런 의미로 다가선다. 하긴 요즘엔 화장실이 거름생산기지로 활용되지도 않는것 같고하니 많은 장점들이 사라져가고 있기는 하다.

그런데 냄새나 시각적인 문제들은 기술적으로 충분히 개선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거 조금 개선해서 자연친화적인 변소를 사용할 수 있었으면 좋을텐데 그것보다 그냥 서양식 양변기 들여오는게 경제적이었을까? 통째로 서양식으로 바꿔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최강의 장점은 재래식 화장실은 독립적이라는거다. 화장실 자체만으로 모든 기능을 완벽하게 수행한다. 서양식 요즘 화장실은 어떤가? 수도가 끊기면 사용중지다. 비데있는 곳은 전기가 끊기면 또 곤란해진다.

더하여 그냥 거적대기로 사방을 막은 그런 변소들도 정겹고 그립기도 하다. 폐쇄되지 않은 공간, 밖에 있는 사람과 충분히 소통할 수도 있고, 여유가 있는 공간. 지금의 완전 폐쇄형보다 훨씬더 인간적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배설'이 숨기거나 부끄러워해야할 일이 아니고 그저 '일상적인 일'이라는 생각이 스며있는듯 해서이고 거적대기로 그냥 둘러놓기만 해도 안심하고 볼 일 볼 수 있다는 믿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5.
그런 이야기 하자고 시작한건 아닌데 이상한데로 샌거 같다.

며칠전에 안양집에서 화장실 변기가 막히는 사고가 있었다. 나는 컴퓨터앞에 앉아있었는데 변기가 막혔다고 서두르길래 금방 해결되려니 했다. 애엄마는 이런 저런 방법을 동원해서 뚫어보려고 하는 모양인데 시간이 점점 흘러가고 밤이 되었는데도 해결이 안되는 모양이었다.

'내가 할께' 해도 '됐어요~그냥 계세요~' 이러니 그냥 컴퓨터앞에 앉아있었고 계속해서 미안하고 찜찜했다. 그런데도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가서 변기뚫는 도구를 뺏어서 내가 하지 못했던것은 혹시라도 구역질이나 하게되면 더 미안해질까봐서 였다. 자식들이 싸놓은 똥을 보고 구역질하는 아빠라...그거 내가 생각해도 볼썽사납다...

밤이 깊도록 해결이 안되고 결국 애엄마가 한번, 아이를 보내서 또 한번 도구를 두개나 더 사왔다. 그리고 나도 나섰다. 변기는 누런 똥물이 가득차 있었고 애엄마는 그 속으로 압축시켜서 뚫는 그 도구를 계속 눌렀다 뗐다 하고 있었는데, 그야말로 '백약이 무효'인 상황이었다.

내가 용감하게 건네받아서 손아귀가 아프도록 해 댔지만 되질 않았다. 결국 그 똥물을 다 퍼내고 해보자고 해서 애엄마 다시 그걸 퍼내고. 그러면서 몇번이나 울컥하고 구역질이 났던 모양이다. 그걸 참고 한다는데 나는 신기하게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냄새도 많이 나지 않고 눈으로 봐도 덤덤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안심을 했다.

결국 물을 다 퍼내고 트래펑인지를 부어놓았다가 한참 후에 애들 외할머니가 다시 시도해서 성공을했다.

나는 결국 중간에 조금 끼어들어서 깐죽거리다가 만 셈이다. 사람이 이렇게 쓸모가 적다. 대학시절에도 그랬다.

아침에 화장실을 퍼서 지게에 똥짐 가득 싣고 밭으로 내려가 밭에 뿌리고 등교를 하고는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우물에서 두짐 정도 물 길어오기, 화장실퍼서 밭에 거름 주고 가기... 지금은 화려한 송도유원지, 그때만 해도 그렇게 사는 집도 꽤 많았는데...

우물에서 물 길어오는건 몇번 해본 기억이있다. 그런데, 화장실에서 똥퍼서 밭에 거름주는건 한번도 해본 기억이 없다. 나보다 다섯살이나 어린 막내는 그걸 해내곤 했다. 내 기억으로는 그친구가 주로 한것 같다. 그런데 나는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

-------------------
수도 계량기 얼고, 수도관 얼어서 화장실 쓰기 힘들어지니 갑자기 이런 저런 화장실 생각들이 머리속을 헤집고 다닌다. 동생의 똥짐져다 밭에 뿌리기, 그리고 혜주엄마의 변기 뚫기 신공이 생각나면서 나는 왜 이리 게으르고 얄밉게 사나 하는 생각이 공연히 가슴을 짓누른다.

어느경우에나 내가 제일 먼저 나서서 해치우고 웃어야 할 일이었는데 한번도 그러지 못했다. 궂은 일은 남시키고 좋은 일만 찾아서 하려는 이 얌체족이 언제나 정신을 차릴지...







profile image

안녕, 프로메테우스...

  1. 띠용 2010/01/18 21:03 답글수정삭제

    변소는 재래식 같고, 화장실은 서양식같은 느낌이 있긴 하네요.히히

    • 농우 2010/01/18 21:12 수정삭제

      하하하..저희는 변소라고 쓴다고 야단맞은 기억도 있어요~~화장실이라는 말이 더 점잖고 교양있고 뭐 이렇게....ㅋㅋㅋ...우스운 세상이었지요~~^^;;

  2. 초하류 2010/01/19 23:31 답글수정삭제

    재래식 화장실은 역시 뭐니 뭐니 해도 푸는 맛이죠..ㅋㅋ

트랙백 주소 :: http://nongwoo.ne.kr/1239/trackback/
옵션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