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로하신 어머니, 지난 초여름에 아버지 여의시고 더욱 힘들어하시는게 안쓰러워서, 며느리가 해드리는 더운밥을 좀 드시게 해야겠다 싶어서, 큰녀석 도시락 반찬도 어머니가 하지 못하고 늘 안양에서 해 나르는게 안됐어서, 이런 저런 핑계가 백가지도 넘으니, 하루라도 빨리 집근처로 데려오려고 기회를 보고 있었다.
사실을 이야기하자면 나는 그리 안타깝게 여기지 않은것 같기도 하다. 그 사람이 더 안달이었다. 직장도, 집도, 아이들 학교도 옮긴다는게 하나같이 만만한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무슨 배짱인지 늘 웃으면서 옮기자고 했었다.
그러다가 결국 때가 목에 차고 말았다. 둘째와 세째가 중학교 들어갈 나이, 네째인 아들녀석은 초등학교 입학할 나이가 된게다. 안양에 있는 둘째와 네째를 인천으로 데려와서 입학시켜야겠다 싶었고, 녀석들도 그렇게 해달라고 하는 통에 일이 급진전되었다.
문학동 어머니 집으로 합치기가 힘든 상황이어서 집근처에 전세를 하나 얻어 일단은 이사를 하자고 결론이 났으나, 시작하기를 겨울에 시작하고 보니 집을 얻기도 힘들고 살던 집 내놓은것도 나가지를 않는다. 이래저래 한달 이상을 속만 끓이면서 보냈다.
그 와중에도 주말에는 세식구 데리고 인천으로 와서 하루이틀 같이 자고 가고, 어머니 아프시기라도 하면 즉시 올라와 살림을 돌보고, 어머니 간호를 하다가 가곤한다. 아무래도 안양에서 인천으로 왔다갔다 하는 일이 시간도 힘도 많이 들 수 밖에...아니라고는 하지만 늘 안타깝고 미안하다.
이래저래 겨울이란게 얼어붙는 계절이긴 한건가? 되는 일도 없고 안되는 일도 없이 지지부진한 날들 속에 갑자기 둘째녀석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골낭종'이란 진단을 받게 되었다.
치과치료를 하러 가서 사진을 찍었는데, 20년 넘게 단골인 치과의사 선생이 뭔가 이상한게 보인다고 집어내어서는 대학병원 가보라고 했는데 가자마자 잇몸안쪽의 턱뼈에 '골낭종'이라고 진단이 나왔다. 전신마취하고 수술을 해야 한다는거다.
무슨놈의 어려움을 이렇게 한꺼번에 쏟아부으시는가? 원망 스럽기도 했다. 아직도 내가 겪어야할 어려움이 이리도 많이 남아있었던가? 한탄스럽기도 했다. 그렇게 한 열흘을 지냈다. 마음대로 슬퍼할 수도 없는게 부모라는것일테니...
아이 수술날짜를 잡고 그 전날 입원해야 한다기에 바로 오늘 입원을 시켰다. 아침에 나는 근무하고 아이엄마는 입원시키러 간다고 연락이 왔는데...그러면서 일이 한꺼번에 터져버렸다.
'집 나갔어!' 아이 입원시키러 가는 도중에 연락이 와서 황급히 계약서까지 썼다는것. 이리되고 보니 인천에 연락해서 집이 나와있는걸 알아보았고 내 퇴근시간을 기다려 같이 문학동으로 달렸다. 아이는 외할머니가 데리고 병원에 있고...
일이 되려고 그러는건가? 딱 두개 난 집 중에서 하나가 마음에 든다고 곧장 계약. 결국 안양 전세빼고, 인천 전세 얻고, 아이 입원시키고...세가지 일이 한나절 만에 모두 끝나고 말았다. 무슨놈의 일이 이렇게 한꺼번에 성사가 되나? 이렇게 한꺼번에 해결해주시려고 질질 끌었던가?
하나 남은것은 이제 아이엄마 직장뿐이다. 내놓은 집과 얻으려는 집의 가격차이가 있어서 돈도 걱정이지만 일단 시작되어 기쁘게 진행 된 일, 어렵지 않게 해결되리라 무턱대고 믿고 만다. 물론 그러나 직장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지금 이시간, 둘째 녀석은 제 엄마와 병실에서 자고 있을게다. 가슴이 타고 안타깝기는 하지만 이겨낼 수 있을테고, 수술을 앞두고서도 여전히 지나치다 여길 정도로 밝고 수다스럽다. 고마운 일이다. 어쩌면 그 많던 어려움을 녀석이 다 안고 저리 아픈것인지...
어떤 경우라도 자식은 부모의 업이다. 목소리 하나 발자국 소리 하나도 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그것이 살아있는 고통이고 그것이 사는 의미이고 기쁨이며 보람일테지...둘째녀석 입원시키고 돌아와 앉은 밤시간, 새삼스럽게 삶이 고맙고 충만하다.















